Leonard Bernstein
비범한 아티스트이자, 피아니스트, 지휘자, 미국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 할 수 있는 레너드 번스타인은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번스타인은 1959년부터 1969년까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었고, 비엔나 콘서트 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비엔나 국립 오페라 극장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1987년에는 “비엔나 명예시민”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번스타인의 재능은 고모가 준 중고 피아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번스타인은 열한 살이 되어서야 첫 피아노 레슨을 받았지만,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서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철학, 미학, 문학, 언어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지휘자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는 번스타인을 “천재 소년”이라 부르고 필라델피아(펜실베니아 주)의 커티스 음악원에서 프리츠 라이너에게 배우면서 음악을 계속 이어가라고 조언했습니다. 번스타인은 1943년 카네기홀에서 지휘자였던 브루노 발터가 병에 걸려 갑작스럽게 그 역을 대신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증명했습니다.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과 스트라우스의 돈키호테 공연은 미국 전역에 방송되었고 그의 음악가 경력에 “화려한” 서막을 열었습니다. 얼마 후 번스타인은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와 다수의 연주회에서 지휘를 맡았습니다. 그는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았고(1958~1969년)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바이에른 방송 관현악단의 정기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습니다. 그의 연주 목록에는 클래식 음악과 아방가르드 음악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구스타프 말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번스타인은 특히 청소년 음악회(청소년을 위한 음악회) 텔레비전 시리즈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통해 음악 교육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언어적 재능과 유머 감각이 뛰어났던 번스타인은 어린이와 성인을 모두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클래식 곡을 통해 키, 멜로디, 선법, 인상주의 같은 클래식의 기본 개념을 설명하거나 구스타프 말러나 베토벤 같은 작곡가와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또한 하버드 대학교에서 대답 없는 질문(The Unanswered Question)이라는 6개 강연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음악의 기본 요소를 노엄 촘스키의 언어학 연구에 비유해서 설명했습니다.
유태인계 미국인인 번스타인은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리는 음악회를 열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을 부르는 합창단에게 환희(joy)를 자유(freedom)로 바꿔 부르게 했고, 그래서 ‘환희의 송가(ode to joy)’는 ‘자유의 송가(ode to freedom)’가 되었습니다. 번스트타인은 “베토벤도 분명 동의했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연주회는 20여개 나라에 방영되었습니다.
번스타인은 뵈젠도르퍼와 깊은 관계를 맺었습니다. 비엔나에 갈 때마다 뵈젠도르퍼 셀렉션 살롱을 즐겨 찾았습니다. 번스타인은 창문을 덜컹거리게 할 정도의 저음 건반이 추가된 뵈젠도르퍼 225 모델로 오페라 콰이어트 플레이스(A Quiet Place)를 작곡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 뵈젠도르퍼가 정말 마음에 듭니다! 감사합니다 ..."